2014년에 방영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는 중국에서 엄청난 한류열풍을 일으켰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인 천송이가 착용한 제품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특히 그녀가 자주 먹던 치맥(치킨과 맥주)은 단박에 K푸드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중국에서는 한국식 치킨을 사기 위해 3시간씩 기다렸다고 할 정도였다. 치맥과 치맥의 사촌인 삼계탕을 먹기 위해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이 폭증했다. 우리는 우리 드라마라서 심드렁하게 받아들였지만 중국 학계에서는 ‘별그대’ 열풍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2014년 한 해에만 100여편의 논문을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두 개의 탑’에는 거인족 ‘엔트’가 등장한다. 엔트는 우람한 고목 형태를 한 거인족이다. 거인족이라지만 영화에서는 나무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과 대화하는 모습을 통해 사람으로 분류될 뿐이다.영화에서 처음 엔트를 봤을 때 작가의 상상력에 무릎을 치며 탄복했다. 동물과 식물의 차이점은 움직임에 있다. 동물(動物)이라는 한자어에 ‘움직일 동(動)’이 들어간 이유도 그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동물이 아니다. 반면에 식물(植物)은 움직일 수 없어 ‘심는(植)’ 곳에서 계속 자라
만약 내가 죽게 되면 나는 어디로 갈까. 저승에 가면 나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게 될까. 아니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완전한 무(無)의 상태로 사라질까. 삶과 죽음에 대해 한참 고민이 많던 사춘기 시절의 질문을 요즘 새삼스럽게 다시 되새긴다. 나와 같은 시대를 공유했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난 모습을 보게 되면서 생긴 버릇이다. 사후세계와 관련된 영화가 자주 등장한 것을 보면 이런 의문이 비단 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사후세계를 다룬 영화는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살아
K팝이 전 세계인에게 인기를 끈 비결은 무엇일까? 호소력 있는 가창력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리듬감 등 여러 요인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노래에 곁들인 춤이 가장 큰 인기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명의 인원이 마치 한 사람의 동작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칼군무는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이돌 가수들의 빠른 랩을 알아듣기 힘든 지긋한 나이의 사람들도 그들의 춤동작에서는 눈을 떼지 못한다. 아이돌 가수의 춤은 역동적이면서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지녔다. 그 힘과 에너지는 솔로보다는 그룹에서 훨씬 더 효과적으로
대한민국 양궁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안겨주는 대표적 효자종목이다. 금메달을 싹쓸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부터 9차례나 금메달을 획득했으니 거의 신궁(神弓)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올림픽이 4년마다 열리는 것을 감안하면 33년 동안 왕좌를 차지한 셈이다. 이제 대한민국 양궁은 감히 다른 나라에서 범접할 수 없는 ‘넘사벽’이 된 지 오래다.양궁 실력이 출중하다 보니 그 비결에 대한 분석도 다양하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은 양궁협회의 운영방식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양궁협회에서는 선수를 선발할 때 그 사람의 과거를 묻
“강호동과 이만기가 누군지 아세요?”사람들한테 이런 질문을 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한다.“씨름선수요.” 그렇다. 그들은 씨름선수다. 지금은 씨름판에서 은퇴했으니 정확히 말하면 전직 씨름선수다. 두 사람 때문에 백두장사니 천하장사니 하는 낯선 용어들이 익숙해졌다. 그들 외에도 이봉걸, 이승삼 등 뛰어난 씨름선수들이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호동과 이만기 두 사람만을 대표적인 씨름선수로 지목한다. 그들의 전적이 화려한 원인도 있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방송을 통해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호동은 개그맨과 MC로, 이만기
‘제왕운기’는 고려 후기 문신 이승휴가 쓴 역사서이다. 그는 신라의 역사를 서술하는 부분에서 왕을 제외한 대표 인물 다섯 명을 선정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그들에 대한 짤막한 평가를 덧붙였다. “김유신은 공신으로, 신묘한 병서를 얻어 무예에 정통하였도다. 문장으로 어떤 이가 중국을 움직였는가? 청하공 최치원이 바야흐로 영예를 얻었도다. 불교에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있어, 마음은 옛 부처와 서로 부합하였다. 홍유후 설총이 이두를 만들어, 속언과 향어로 문자에 통하게 되었도다.”이승휴가 선정한 대표 인물 중 김유신, 원효, 의상은
요즘 주부들 사이에서 식기세척기, 의류건조기, 로봇청소기는 ‘삼신가전’으로 통한다. 누군가는 아예 ‘가전의 삼신할매’라고도 부른다. 주부들을 설거지, 빨래, 청소에서 해방시켜 주었으니 신의 반열에 오를 만도 하다. 그렇다면 영화 흥행의 삼신할매는 무엇일까?삼신할매 대신 사대천왕이 주름잡는다. 사랑, 복수, 권력, 돈이다. 모든 영화는 이 네 가지 중 하나를 기둥 삼아 스토리를 전개한다. 그렇다면 의상(義相·625~702)의 생애를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키워드가 들어갈까? 사랑이다. 수행자에게 사랑이라니 무슨 사연이 있는 것임에는 틀
최근 K컬처는 글로벌 콘텐츠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K팝, K영화, K드라마 등은 이미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분야가 되었다. 음악과 드라마에서 시작된 K컬처의 열풍은 웹툰, 연예, 패션, 주택으로 확대되었고, 의료와 교육, 스포츠와 뷰티산업으로 저변을 넓혀가는 중이다. 음식을 먹거나 요리하는 먹방, 화장과 메이크업, 몸짱들의 서바이벌 게임인 피지컬도 무서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한국문화홀릭에 빠져 있다.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는, 과거에 한 국가의 영향력은 군사력이나 경제력 등의 ‘하드파워’로 결정했다면 지금
슈퍼히어로에 관한 영화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물이다. 슈퍼히어로는 초인적 능력으로 보통 사람들이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을 척척 해결한다. 언제나 선의 편에 서서 악을 응징하는 점도 인기 요인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에는 ‘슈퍼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으로 이어지는 슈퍼히어로물의 계보가 전승된다. 슈퍼히어로는 대부분 근육질의 남자들이 주인공이다. ‘소머즈’나 ‘원더우먼’같이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도 없지 않으나 힘쓰는 업종에서는 남자들에게 밀린다. 기계인간을 주인공으로 발탁해 성공한 사례도 있다. ‘터미네이터’와 ‘로보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속담의 출처는 이러하다. 나무꾼이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이상하게 생긴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 안에 들어가 보니 수염이 긴 신선들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나무꾼은 신선들이 두는 바둑을 구경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옆에 놓아 둔 도낏자루가 썩어 있었다. 그는 동굴을 나와 자신이 살던 마을로 내려왔다. 그런데 마을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 있어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마침 지나가던 노인이 있어 나무꾼은 자기 이름이 아무개라고 통성명을 했다. 노인은 나무꾼의 이름을 듣자 이
세상에는 언제나 수많은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사람의 머릿수만큼의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하루살이처럼 떠다니다 생을 마친다. 말하는 순간 사라지기도 하고 운 좋으면 한철을 넘길 때도 있다. 물론 허리케인이 되어 당대의 입과 귀를 휘젓기도 하고 신화와 전설이 되어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가슴을 벌떡거리게도 한다. 이야기는 사람의 목소리에 실려 잠시 형체를 만들어내는 가상의 환영이다. 실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목마른 사람처럼 이야기를 찾아나선다.그런 갈증을 예리하게 감
한류의 열풍이 거세다. 한류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외국에서 대중성을 가지게 되는 것을 일컫는 용어이다. 아시아에서 ‘K컬처’의 인기는 할리우드의 대중문화를 압도하고 있다. 최근 홍콩의 유력 일간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는 ‘K팝’이라는 한류 상설코너가 생겼다. 한국의 드라마, 영화, 밴드, 연예인 동정 등을 소개하는 코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 연예인에 대한 뉴스도 이 코너에서 소개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한류를 소개하는 코너의 클릭 수가 많다는 방증이다. K컬처의 인기는 싱가포르 방송에서도 확인할 수
좋은 시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똑같은 시라도 젊었을 때 읽는 느낌과 나이 들어서 읽는 느낌이 다르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으니 느낌이 같을 수가 없다. 필자에게는 이백의 시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가 그런 경우다. 이 시는 처음 읽었을 때 ‘봄날 밤 도리원 연회에서 지은 시문의 서’라는 제목처럼 꽃가루가 날리듯 화사하고 몽환적인 향기가 훅 끼쳐왔다. 젊었을 때는 내내 그 향기에 취해 살았다. 특히 시의 첫 구절인 ‘무릇 하늘과 땅은 만물이 쉬어가는 여관이요(夫天地者, 萬物之逆旅)/ 시간은 긴 세월을 지나가
개인의 고통은 어떻게 그림에 반영될까. 조선시대 그림은 주문자의 요구에 의해 제작된 경우가 많다. 선비들이 취미 삼아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도 있지만 직업화가의 작품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주문그림의 대부분은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화원(畫員)들이 담당했다. 도화서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그리던 관청이다. 도화서에 소속된 화원은 국가공무원이다. 도화서 화원으로 그린 공적인 그림에 작가의 개인적 취향이나 관심사 그리고 내면의 갈등이나 고민이 반영될 리 만무하다. 궁궐에 소장된 의궤도나 병풍에 작가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이유
이사 오고 나서 가장 큰 변화는 아침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성스럽고 신비스러운 기운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고나 할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오면 거실은 아직 어두침침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논과 밭 그리고 냇가 너머에 있는 아파트 숲 위로도 어둠은 여전히 강고하게 뒤덮여 있다. 어쩌면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짙은 어둠이다. 그런데 저 멀리 동쪽 산 위의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다. 산이 가로막고 있어 빛의 근원은 확인할 수 없지만 산 너머에서 터져나오는 빛의 끝자락일 것이다. 아침이 오고 있다는 신호다. 주황색에
어떤 사람의 글을 읽을 때 짤막한 문장에서 글쓴이의 삶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치 그 사람을 직접 만난 것처럼 반갑다. 대부분의 글쓴이는 글 속에서 자신의 실생활이 드러나기를 원치 않는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일 것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글에 사적인 목소리를 담는 것이 글의 객관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글에서 글쓴이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장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글쓴이와 독자 사이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더 이상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 접근금
코로나19로 미술관 출입이 금지되던 때였다. 그림이 보고 싶을 때마다 사이버세계에 접속해 각 나라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어찌나 화질이 좋던지 실제로 현장에 가서 보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박물관에서는 대부분 그림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조명을 약하게 켜둔다. 아무리 가까이 가서 보려고 해도 세부적인 부분을 잘 볼 수 없을 때가 많다. 사이버상에서는 다르다. 관람자가 원하는 대로 그림을 마음껏 확대해서 볼 수 있다. 손가락으로 클릭만 해도 생생한 화질의 그림이 눈앞에 펼쳐지니 이런 신세계가 없을 정도다. 편안한
누구나 완벽한 인생을 산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 또한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후회되는 일이 참 많다. 어쩌면 그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했을까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인생을 다시 살라고 하면 절대로 그런 시행착오는 겪지 않을 것 같은 허점투성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지혜롭게 결정하고 실행한 일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젊었을 때 험악한 해외의 오지(奧地) 답사였다. 사찰과 마애불 등은 주로 민가와 떨어진 산속 깊은 오지에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힘들고 가파른 곳만 찾아다녔다. 중국 답사 때는 하루종일 버스를 타
또다시 수능일이 다가왔다. 사람살이는 통과의례로 채워지는 듯하다. 봄 다음에 여름이 오고, 가을 다음에 겨울이 오듯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치러야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이태원 참사, 오봉역 역무원 사망사고, 영등포역 무궁화호 탈선 등 수많은 재난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세상의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간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통과의례로 치러야 할 일 중 하나가 수능시험이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은 마음이 복잡할 것이다. 시국이 어수선해서 불안할 것이고, 준비가 덜 되어서 심란할 것이다. 세상 밖은 시끄럽지만 그동안 수많은 날들을